효율과 자동화라는 이름으로 세공된 소음 제거(Noise Cancelling)의 세계. 그 매끈하게 다듬어진 고요 안에서 우리의 귀는 어느 때보다 안전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수동적인 상태에 놓혀 있다. 기술이 미리 선별하고 잘라낸 소리를 건네받는 동안, ‘듣기’라는 행위는 신체가 지닌 생생한 감각을 잃은 채 단순한 정보의 수신으로 축소되고 만다. 프로젝트 〈귀耳신〉은 이 통제된 정적의 표면에 낯선 균열을 내며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귓속 깊은 곳에서 일사불란하게 진동을 처리하던 장기들을 두개골 밖으로 끌어낸다. 거대해진 부피와 무게를 얻고 모습을 드러낸 장기 조각들은, 완벽한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음향 기기도, 고정된 결론으로서의 조각도 아니다. 그것은 소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을 해체하고, 관객이 직접 매만지고 흔들며 소리와 함께 놀 수 있는 통로에 가깝다.
전시장 밖을 유유히 떠도는 귓바퀴와 관객의 손에 끌려 전시장 내부를 둔중하게 구르는 청신경 조각은 소리의 원형을 투명하게 비추지 않는다. 관객이 장기 조각을 끌고 신경(거스러미) 사이를 거닐 때마다, 외부의 소리는 꺾이고 흩어지며 예측을 비켜나간다. 이때 관객은 건너온 소리의 정답이 무엇인지 추리할 필요가 없다.
매끄러운 표면을 의심하는 것, 예측을 비켜나가는 소음 속에서 결론 없이 그 소리의 향방을 지속적으로 궁금해하는 불투명함이야말로 이 프로젝트가 마주하고자 하는 감각의 태도다.
공간은 비로소 손끝과 몸 전체로 소리의 진동을 탐색하는 곳. 그곳에서 감각은 멈추지 않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변형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귀의 근육을 조율해보는 행위는, 우리가 잊고 있던 청취의 입체감을 돌이키는 시도가 된다.
선명하게 닫히는 문장들 대신, 각자가 거닐 수 있는 넉넉한 여백을 건넨다. 머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떠도는 귀(耳1/鬼2)를 거느리고 내부를 천천히 더듬어가는 시간. 직선의 효율성에서 잠시 비켜서서, 손끝에 잡히는 진동과 우연히 마주치는 웅성임 사이로 은은한 호기심이 미끄러져 들어가기를. 그 흐릿한 진동의 틈 사이로, 우리의 듣기는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고유한 모습을 드러낸다.